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론 음모론 (문단 편집) == 각 붕당의 입장과 왕권과의 관계 == 또한 서인-노론과 남인 세력은 사상적 배경에서부터 왕권과의 관계가 달랐다. 서인-노론은 이이의 이기일원론을 기반으로 '왕과 신하가 같이 다스리는 나라'라는 사상이 강했던 반면, 남인은 이황의 이기이원론을 기반으로 '왕이 주도하고 신하는 보좌하는 나라'라는 사상이 강했다. 이 부분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 바로 '''[[예송논쟁]]'''이다. 그런데 조선은 건국부터 사대부들이 주도한 '군신공치'의 개념이 대단히 강했고, 이는 서인-노론 세력이 현실적인 권력 기반 뿐만 아니라 명분 면에서도 우위를 차지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. 그래서 남인은 어떻게든 왕권과 접근해야 했고, 왕 입장에서도 왕권이 주도하는 체제를 수립하기 위해선 남인 세력과 손을 잡고 서인-노론 세력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. 바로 이 부분이 위에서 언급한 간신론, [[군약신강]] 등의 낡은 인식과 결합하게 된 것이다. 양반-사대부 중심의 체제를 주장하는 서인-노론 세력은 마치 유럽의 반동 귀족 세력처럼 국정을 농단하고 개혁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덧칠하고, 남인은 왕권을 수호하고 개혁을 주창하는 신진 세력인 것처럼 포장이 된 것. 허나, 그 남인이 [[숙종(조선)|숙종]] 시기에 벌어진 수차례의 환국으로 인해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된 후로는, [[조선]] 특유의 절대왕권을 지향하는 정치 풍토와 더불어, 숙종과 [[영조]], [[정조(조선)|정조]]라는 이미 왕권이 막강했던 조선의 역사에서도 특히나 돋보이는 수준으로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왕들이 등장하면서, 노론 역시도 군신공치 개념을 통한 왕권 견제를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[*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[[임오화변]]이다. 노론 음모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, 노론 측은 되려 [[사도세자]]를 감싸는 입장이었는데, 조정 내 절대다수의 여론도 무시하고 [[영조]]가 독단적으로 세자를 죽여버린 사건이다. 노론이 내세우는 군신공치가 [[조선]] 특유의 정치풍토 하에서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다.]. 결국 노론이건 소론이건, 남인이건 간에 왕권을 견제할 방도가 없어지니 그저 왕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예스맨 신세가 되어버렸는데, 이런 상황이 나중가면 이런 절대왕권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몇몇 정치 명문가들이 득세하면서 그 악명높은 [[세도정치]]로 이어진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